생각 상자/일상 기록9 [日記] 보령생활 94일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나가는 중이다. 처음엔 순조로운 듯 하였으나, 묻어두고 갈 만큼 미세하지 않고, 적응해서 나아갈 만큼 매끄럽지 못해서 정신적인 투쟁을 연일 반복하고 있다. 때때로, 속아 넘어가는 기분도 들고 속아주는 기분도 든다. 진실이 뭔지 밝히고 싶으면서도, 귀찮고 정신이 없어 금방 모르는 척 무시해버리기도 하는 아주 사소하면서 일상을 계속 헤집는 불편함. 어떤 도구를 사용해야 이 불편한 가시를 손쉽게 빼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아니다, 가시가 아니라 가시가 전체에 뒤덮힌 장갑을 낀 것 같다. 벗자니 손이 시렵고 끼고 있자니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다. 많이 배웠다. 스파르타 학원에 다니는 기분이다. 헬스는 혼자하는 운동이지만 트레이너가 있으면 뭐든 한 개 더 하게 되는 그런 기분이랄까. 어디.. 2022. 11. 26. 상실의 시간 상실의 시간 솔직한 그 표현들이 좋았다 계절을 어루만지는 그 눈빛이 좋았고 새 날을 맞이하는 그의 가슴이 좋았다 거짓없으면서 거짓 자체였던 그를 반쯤 감은 눈으로 본다 우주를 담아 피어난 잎은 저린 각질이 되어 구멍 난 가슴을 뒹군다 표면에서 일어나는 박동이 어릿어릿 반쯤 감은 눈을 간지를때 잠 깊은 자리로 가 버린 오늘의 뒷꿈치가 내일을 미룬다 서두르지마라 또 다시 오늘이어서는 안되니 거짓없으면서 거짓 자체였던 나는 반쯤 뜬 눈을 감는다 2022. 11. 20. [日記] 한 귀퉁이 시 한 귀퉁이 시2022년 6월 25일. 시는 가르치려들지 않는다. 독자 스스로 곡갱이를 들고 의미를 캐내어 듣는다. 그게 곡갱이질로 인해 생채기가 난 의미인지 시인의 온전한 의미인지 제멋대로 해석하기 나름인지는 알 바 없다. 그저 고픈 마음을 채울 수 있는 한 귀퉁이 시를 떼어 먹으면 그만이다. 2022. 11. 18. [日記] 더 작은 세계로 숨어들어 더 작은 세계로 숨어들어2021년 10월 29일. 요 며칠 눈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며칠 아예 만나지 못한 기분도 들어요. 서운할지 모르겠지만 아주 인생에서 사라졌던 것 같기도 하고. 온갖 감정에 휘둘렸는데 지금은 그게 뭔지도 모르겠어요. 일 속으로, 아주 깊이 몰입해있었던 것 같아요. 무엇이든 더 미세한 단위에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소설은 금방 다른 세계에 데려다주고, 글쓰기는 내 세계를 헤엄치게 해주고, 도마위의 칼은 무지개색 재료들을 이끌며 놀이를 할 수 있게 해주지만 일상을 계속 나를 위로하며 보낼 수는 없으니까. 마음의 빈 자리는 용케 좋은 습관들을 찾아내고 있어요. 오르막길을 오르는 좋은 근육들이 조금 쌓였다랄까. 저는 어렴풋이 해야할 일을 아는 것 같아요.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요... 2022. 11. 16. 순리 순리 2021년 8월 20일. 신뢰를 결심하는 것은 낯설지만 익숙해질 일이다 이루지못한 꿈이 있었던가 좇을 때 더 의미가 있었던가 아마도 그는 밭을 일구고 세상을 리드하는 역할을 맡았나보다 나는 그를 자연삼으면 된다 힘든 날들은 허기진 날의 타지않는 숯처럼 느린 죽음일 뿐이다 2022. 11. 16. [日記] 혼자하는 말싸움 혼자하는 말싸움2021년 7월 2일. 말이 옳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말은 의미가 없거나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버린지도.. 하고 싶은 말들은 조금 늦게 따라온다. 대화를 나누던 사람과 헤어졌거나, 쉽게는 이미 대화의 주제가 전환되었을 때 하고 싶은 말이 만들어지곤 한다. 그리고 말하지 못해 후회하거나, 아쉬워하고, 때로는 맞지 않는 타이밍에 하고 픈 말을 덧대고 다시 후회한다. 대부분의 타이밍이 맞는 말들은 안타깝게도 영혼없는 추임새들이었다. 읽고 느끼는 시간을 더 깊게 가지고 소중한 말 한마디씩을 뱉고 싶다. 그게 나를 사회적으로 좀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사람으로 평가하더라도 긴장을 내려놓고 살고 싶었고, 말을 신중하게 뱉고 싶다는 전사가 아쉬운 타이.. 2022. 11. 16. [日記] 연극쟁이 연극쟁이2021년 5월 15일 그리고 20일. 연극이 보고싶다는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연극은 서울이고, 연극은 그 시절의 그 사람들이고, 연극은 먼지바람이 감싸는 지하의 그 공간들의 기억을 말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연극을 보고싶다고 말하면 현재를 밀어내고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 같아 심장이 일으키는 진동을 이내 무시하게 된다. 연극이 보고싶어서 연극을 하고 있다. 호두까기 병정 조차도 자신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 흐느끼는 날이 있다가도, 산뜻한 바람이 불면 다시 피어난 봄날의 싹처럼 그런대로 괜찮았다 할 것 같다. 올곧게 서 있는 순간, 켜켜히 쌓인 먼지에 어깨가 무거워지는 순간들 그리고 마디마디가 녹슬어가는 순간들 까지 말이다. 모든 것이 부럽게 여겨진다. 2022. 11. 16. [日記] 빛나는 밤의 닭 빛나는 밤의 닭2021년 4월 26일 그리고 28일. 밤이 빛난다. 빛들이 너무 강렬하게 쏟아져서 피곤하다. 밤이 오지 않는 닭장에 갇힌 기분이다. 밤낮으로 세상을 비추는 것으로 그들이 얻는 것은 달걀일까. 허들에 너무 가까워도 넘기 어렵다. 계산된 스텝이 준비되어 있거나, 제자리에서 단숨에 높이 뛰어오를 기량이 있거나, 허들을 넘어뜨리고 나아가도 문제없을 만큼 낯짝이 두껍거나. 창피함을 감수할 자신이 없어서 화가난다. 분노는 나의 힘이고 성장에 집착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화가 난다는 것은 좋은 징조다. 이렇게 빨리 다음 허들이 놓여있을거라 예상 못했기 때문에 더 화가 난다. 잘 쉬는 것이 얼마나 생산성과 창의성에 도움이 되는지 안다. 내가 얼마나 못 쉬는 사람인가도 안다. 언제까지고 우격다짐할 수는.. 2022. 11. 16. [日記] 어느 새벽 어느 새벽2021년 4월 5일 새벽 5시. 큰 도로길가 쪽에서 야구장에서 환호할 때나 불어댈 법한 휘파람 소리가 연이어 난다. 한 번은 낮은 음에서 높은 음으로, 다음에는 높은 음에서 낮은 음으로 나는 식이다. 두 소리의 반복이 산중턱에 머리를 부딪히고 고꾸라지며 어미를 늘이고 밤의 장막이 그림자를 드리워 빛나는 두 소리만 눈알처럼 알알이 구른다. “언제까지 저럴 작정이지?” 나는 세번째 캔맥주를 따며 거친 마음을 뱉었다. 낮에는 호수를 보고 왔다. 호수의 잔잔함이 너무 아름다우면서도 외로움이 삐걱대며 차오르니 머물지 않고 감상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길 건너 반복되는 휘파람 소리는 어둠에 쌓인 호숫가를 상상하게 한다. 지는 해를 등지고, 잠들어가는 호수를 등지고 밭을 일구는 아주머니의 굽은 허리를 상상.. 2022. 11. 16.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