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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상자/생각 정리

[book]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프레임'

by 두지아 2022. 12. 8.

 

"역지사지의 심정이란, 다름 아닌 상대의 맥락을 이해해주는 것이다."

여기서 '맥락'이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역지사지는 보통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즉, 온전한 이해에는 도달하지 못해도 명확히 목표가 되는 타인을 이해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이 책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신세졌다는 생각이 들 때, 마음의 '부채'를 마음의 '장부'로 전환하면서 대상에 대한 정의를 바꾸었듯이, 이해에 맥락을 더함으로써 추상적 이미지를 가두고 있던 안개를 걷어낸 느낌이 들었다. 말이란 정말 놀랍다.

프레임은 정의고, 프레임을 바꾼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정의를 바꾼다는 의미다. 나는 옳은 정의를 내리고 세상을 대하고 있는가. 주변의 모든 불필요하다 생각되는 것들에 잡초라 정의내려왔던 것은 아닐까. 일, 직업, 업무, 소명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프레임은 결심의 대상이 아니라 설계의 대상이다."

회피 프레임에 갖히면 실패의 가능성만 생각하게 된다. 성공 프레임을 쓰면 성공적인 결과의 단맛을 상상하며 출발선에 설 수 있다. 마치 그럭저럭 괜찮은 정도의 음식점에서 앞 사람이 수저를 뜰 때 마다 '맛있다, 맛있다'를 외쳐주면 음식이 더 맛있어지는 것 처럼. 의식은 삶을 대하는 태도를, 실제로 나타날 결과를 변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주변의 변화도 이끌어 낼 수 있다.

단, 주의할 점이 있다. 이 책에서는 허위 합의 효과라는 말이 나온다. 자신의 의견이나 선호, 신념, 개념이 실제보다 더 보편적이라고 착각하는 자기중심성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나는 너를 알지만 너는 나를 모른다’는 생각은 자기중심성이 만들어낸 착각이고 미신일 뿐이다. 정답은 ‘나도 너를 모르고 너도 나를 모른다’거나 ‘나는 네가 나를 아는 정도만 너를 안다’이다. 이러한 착오는 관계심리학에서 여러번 언급되어 나온다. 스스로를 경계하게 하는 내용이고 매번 뜨겁게 느끼면서 자주 까먹는다. 사람 프레임만 사용한다면 다수의 의견에 가끔씩 동조하는 보통의 존재를 필요 이상으로 비난하게 된다. 자기중심성이 만들어내는 한계 앞에서 철저하게 겸허해져야 한다.


"진정한 지혜는 내가 나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을 설명하는 마음의 습관에서 나온다."


‘뒤에서 보면’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인다. 결과는 현재에 있다. 과거에는 알 수 없었던 그것. 현재의 프레임으로 과거를 평가하는 것은 마치 1900년대 초에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금에 와서 그 당시 사람들을 체포하는 것과 같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고 나면, 자신은 처음부터 작은 나비였다고 주장하게 된다. 성숙의 과정이 모두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우리의 영혼을 살아 있게 한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깨어있어야 하고, 자기중심성과 투쟁하면서 가장 보통인 존재로 타인의 맥락을 받아들이는 것. 아름답고 행복한 삶이, 관계가 다가올 수 있도록 현명한 정의와 설계를 내리는 것이 가장 좋은 오늘다움이 될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너무나도 고통스럽다고 느낄 때, 그들을 새롭게 정의함으로써 고통의 구덩이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다. 삶의 지혜가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존재한다는 것에 감사하다. (2022.11.18)


프레임을 가장 잘 활용하고 있는 곳이 정치판이다. 

정부가 이태원 참사 이튿날인 10월 30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중대본 회의에서 '압사'라는 단어를 빼고 '사고'라는 용어를 쓰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사태수습이 시급한 이 때에 왠 말장난인가 싶지만, 정부는 이 때 프레임을 바로잡지 않으면 국민들로 부터 부정적 프레임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압사'는 '사고가 되고, '희생자와 피해자'는 '부상자와 사망자'가 되었다. 

프레임을 활용할 때는 섬세한 설계가 중요한데, 비밀이 없는 이 시대에 그 설계의 속내가 드러났으니 국민으로써 안타깝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프레임은 스스로 세상을 바라보는 옳은 눈을 갖기 위한, 행복한 인생을 설계하기 위한 정의라 생각한다. 사람들의 눈, 귀를 가리고 잘못을 숨기기 위해 이용되는 것이 목적이 아닐 것이다. 이제는 프레임의 옳은 사용뿐만 아니라, 나쁜 의도를 가진 프레임을 바로 보고 인식하는 능력도 필요할 것 같다. (2022.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