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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상자/생각 정리

헤르타뮐러 숨그네

by 두지아 2017. 3. 17.

인간이 주는 인간의 고통이라는 것이 있었다. 가슴에 천재지변이나 일상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죽음이 남긴 트라우마보다도 잔인한 생체기를 남겼을 인간의 과거가 거기 있었다.
 
우리의 긍정적 사고는 쉽게 극 속의 인물이 극한을 경험하고 다시 새인생을 시작 할 자리에 놓였을 때, 그렇지 않은 사람 보다도 남은 인생을 더 열정적으로 살아내며 한줄기 빛에 감사하고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가게 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속의 진실, 상상이 아닌 실제 인간이 경험했던 참혹한 과거는 냉정하게도 잔인한 운명에 맞선 그들을 끝끝내 시들도록 내버려 두었다.
 
나는 '더 로드'라는 책에서 보았던 지옥의 맛의 끝에도 달콤한 풀내음을 발견했었다. 멸망적인 환경, 희망을 찾아내지 못한 내면의 스러짐, 배고픔, 불신, 점점 싸늘하게 식어가는 하나 남은 그의 피붙이.. 그 안에서도 빛을 내던 '우연히 발견한 캔통조림'이라는 것이 있었다.
'숨그네'에는 조금 다른 빛이 있다. 인간성이 말살되어 가는 처참한 상황에서 저항이라는 단어를 잊고 강제로 복종하며 살아가는 강제수용소에서의 삶은 자살을 감행한 몇 동료들이 말하듯 허구의 지옥이 아닌 실제의 지옥이었다. 그곳엔 캔통조림이 아닌 "너는 꼭 돌아올꺼야"라는 할머니의 말씀이 있었다. 잠시 뱃속을 지배할 수 있는 무엇보다도 끝끝내 고통속에서 인간을 살아남게한 말 한마디. 인간의 메시지로 인간이 주는 고통을 견뎌낸다. 현실이 안겨주는 모순은 인간을 더욱 알 수 없는 존재로 만든다.
 
시멘트 가루로 얼룩진 피부가 갈라질 쯤, 쓰레기 더미를 뒤져 찾아낸 감자껍질을 오래토록 씹으며 세상에서 맛보았던 요리들을 상상하고 정수리에 빈대 문 자국에서 고름이 피어오르고 화학가스와 유리조각을 삼킨 폐가 경련을 일으키고 퀘퀘한 땀냄새와 짙은 석탄향이 후각을 마비시켜 두통으로 전이되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인간의 끈질긴 의지로 지옥을 돌아 원래 보금자리로 돌아오지만 강제수용소에서의 강제적인 일상에 마음을 강제적으로 두어진 탓에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껍데기만 남아 예전과 다름없는 겉도는 인생을 살아지게 됐다는 것이 조금 안타까웠다. 보상받지 못한 고통의 시간. 보상받길 바란 적 없는 그들의 머리. 스스로 감추고 싶었던 양배추 스프의 시간. 학대라는 것은 학대받지 못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철저히 인간답지 못하게 함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책장을 덮는 순간 전쟁과 폐허 속에서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고통을 견뎌내고 나면 꼭 행복하리라는 흔들림 없던 마음이 무릎꺽기를 당한 기분도 들었다. 작가는 누군가가 숨기기에 급급했던 처참한 과거를 들춰내 보여주었고 나는 글로써 아름다움을 느끼고 이해로써 가슴이 답답했으며 현실로 받아들임으로 시대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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