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도 하늘말나리야, 다른 나리꽃들은 땅을 보면서 피는데
하늘말나리는 하늘을 보면서 피어. 소희, 너를 닮았어 '
책장을 뒤지자 사촌동생이 과제로 사용했던 책을 발견했다.
군데군데 콧물이 묻어 있었고 꼬질꼬질한 게 모양새는 좀 그랬지만,
겉표지며 페이지 마다 줄을 그어가며 새심하게 읽고 느낀점을 써논게 재미있어 읽어 보기로 했다.
동생은 '책의 힘을 믿는다'고 했다.
그 힘으로 인해 책장을 펼침과 동시에 나는 열세살이 되었다..
"엄마, 가슴이 뛰어요. 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눈다는 생각만 해두요"
봄의 설레임, 여름의 싱그러움, 가을의 풍요로움과 겨울의 초연함
계절의 변화와 상관없이 내게 변치않는 것이 하나 생겼다.
수시로 변하는 미르의 가면과도 같은 검사용 일기장이 아닌 내 본연의 모습이다.
그것은 비밀 일기장이고 아무한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곧잘 그 것을 들키곤 한다.
처음 학교에 갈 때나 첫사랑을 할 때쯤엔 아마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어른이 된다는 건 아마도 양파껍질을 만들어 내는 과정인 것 같다.
노인이 되고 마음을 여는 순간이 오면 잘게 썰려 카레에 섞이겠지?
혼자만의 얼굴을 본 사람이 가져야 하는 아주 작은 예의.
사람들은 흔히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곤 한다. 그리고
깊게 생각하지 않고 던진 한마디로 생채기를 남기기도 한다.
그래서, 이해를 구하지 못할땐 말문을 닫는것이다.
사람마다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르겠지만
" 엄마, 그래도 목줄기가 뻤뻣해지도록
엄마가 그리울 때가 있어요 "
울고 싶은 아이를 때리는 마음과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마음은
모두 아주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날 때려 줄 사람이 수시로 나타나
나의 비밀은 비밀로 간직한 채 펑펑 울게 해준다면 좋겠다.
또.. 괭이밥같던 과거의 엄마를 보면 그 때 때려줄 걸 그랫나.
받아쓰기를 매일 빵점 받아오던 그 시절처럼.
깨닫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 네가 어디에 있든 이 느티나무의 마음자리가
널 따뜻하게 해 줄 거야 "
글쎄, 아마 지금쯤 그 아이들도 시간이 어른으로 만들어 놓았겠지?
눅눅해진 어린이의 일깃장을 들춰보면서 과거를 회상하거나
일년에 한두번 바쁜 일정을 재쳐두고 달볕마을로 달려가
느티나무 마음자리에서 참외와 오리알을 늘어놓고 담소를 나누겠지.
결국은 다 같이지는 거지만,
어린시절의 추억을 이렇게 아름답게 간직할 수 있다는 게 참 멋져보였다.
내가 열세살에 이 책을 읽었다면 좀 더 성숙할 수 있었을텐데
- 등록일시
2007.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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